도시의 고령화, 위기인가 기회인가? (고령 친화 도시, 해외 사례, 고령사회 도시전략)

전 세계적으로 도시 고령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서울은 물론 도쿄, 파리, 베를린, 싱가포르 등 선진국 대도시들 역시 같은 문제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어떤 도시는 고령화를 도시 쇠퇴의 신호로 보지 않고, 새로운 기회로 전환해 '고령친화도시(Age-Friendly City)'로 재탄생하고 있다. 본문에서는 도시 고령화의 도전과제를 정리하고, 이를 기회로 만든 해외 도시들의 구체적 사례를 통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살펴본다.

고령 친화도시

도시 고령화, 단순히 위기인가?

전통적으로 도시는 젊은 인구의 중심지였다. 일자리, 교육, 문화 인프라가 집중되면서 청년과 중장년층이 모여들었고, 도시는 역동적이 됐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한국은 2025년이면 초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비중 20% 이상)에 진입하고, 서울시고령 인구 비중이 18%를 넘었다. 도쿄는 이미 고령 인구 비중이 25%를 넘어섰고, 독일 베를린은 2030년까지 고령자 인구가 전체의 30%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러한 도시 고령화는 

의료·복지 수요 증가 

고독사 문제 

소비력 약화 

노후 기반시설 부담 등의 문제로 인식된다. 

하지만 반대로 보면, 고령 인구는 

새로운 주거 수요 

맞춤형 산업 성장 

공공일자리 창출 

사회적 경험 자산의 활용 기회로 전환될 수 있다. 

도시 고령화는 위기가 아니라 도시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시각이 필요하다.

WHO의 '고령친화도시' 개념이 바꾼 패러다임

2007년 세계보건기구(WHO)는 도시 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해 ‘Age-Friendly Cities(고령친화도시)’ 개념을 발표했다. 이 개념은 단순히 노인만 위한 도시가 아니라, 모든 세대가 안전하고 편리하게 공존할 수 있는 도시 환경을 설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WHO는 고령친화도시의 8대 영역을 제시했다:

  • 외부 환경 및 건축
  • 교통
  • 주거
  • 사회 참여
  • 존중 및 사회적 포용
  • 시민 참여와 고용
  • 커뮤니케이션 및 정보 접근
  • 지역사회 지원 및 보건 서비스

이 개념은 전 세계 1,300여 개 도시에서 채택되었고, 서울을 포함해 전주, 대구, 수원 등이 가입했다. 하지만 아직도 한국은 개념적 수용에 머무르고 있으며, 실질적인 인프라 투자와 제도 개선은 미진하다. 반면, 유럽과 일본 일부 도시는 이 개념을 실제 도시 구조와 서비스에 반영해 눈에 띄는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도쿄의 ‘초고령도시’ 실험: 밀도와 복지의 공존

일본 도쿄는 세계에서 가장 대표적인 초고령 도시다.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300만 명을 넘고, 인구 밀도가 높아 도시 설계에 도전과제가 많다. 그러나 도쿄는 고령 인구를 위한 ‘근거리 도시(Micro-city)’ 전략을 통해 답을 찾았다.

도쿄 도청은 2015년부터 23개 구에 '지역복지거점'을 구축해 노인 돌봄, 건강 관리, 식사 지원, 사회적 활동 공간을 통합했다. 특히 고령자가 500m 이내에서 생활 필수 인프라를 이용할 수 있도록 ‘500m 생활권’을 도입했다. 휠체어나 보행기를 사용하는 고령자를 위한 무장애 보행로, 평지형 저층 공공주택, 자동낙상감지 시스템 등이 도입되었다.

또한, ‘도쿄 노인 일자리센터’를 통해 연간 30만 건의 고령자 단기 일자리를 연계하며 사회 참여도 장려하고 있다. 도쿄는 ‘나이 들어도 일하고 소비하는 도시’라는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파리의 ‘인터세대 도시’ 전략: 세대 통합의 모델

프랑스 파리는 고령자만을 위한 도시 설계가 아닌, 세대 간 교류를 기반으로 한 도시 설계에 중점을 두고 있다. ‘Ville Amie des Aînés(노인 친화도시)’ 정책을 통해 파리는 세대 혼합형 주택을 보급하고, 주거단지 내에 청년-고령자 공동공간을 설계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Intergenerational Residence(세대통합형 주택)’ 제도이다. 이 제도는 청년 1명이 저렴한 월세로 입주하는 대신, 고령 입주자들과 함께 생활하며 사회적 돌봄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파리 시정부는 이를 통해 

노인의 외로움 해소 

청년 주거비 절감 

세대 간 이해 확대

라는 1석 3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또한, 파리 지하철에는 고령자 전용 좌석이 아닌 ‘우선적 배려 좌석’으로 전환하면서, ‘노인=약자’라는 프레임을 벗고, ‘고령자=동등한 시민’이라는 시각을 도시 전체에 확산시키고 있다. 고령자와 청년이 함께 살아가는 도시 구조가 파리의 장기 전략이다.

행복한 가정 모습

베를린의 ‘보행자 중심 도시’로서의 전환

독일 베를린은 유럽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도시 고령화를 기회로 삼은 도시 중 하나다. 특히 베를린 시는 고령자의 도시 이동권 보장을 위해 전면적인 보행자 도시 개편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횡단보도 대기시간을 고령자 기준으로 조정했고, 노인들이 자주 오가는 길목에는 자동의자, 음성 신호등, 그림자형 그늘막, 난방 의자 등을 설치했다. 또한, 지하철 출입구에는 엘리베이터 설치를 의무화했으며, 도보 5분 거리에 공공 의료시설, 커뮤니티 센터, 카페 등 휴식 및 문화 공간을 집약시켰다.

뿐만 아니라, 고령자 대상 주택 리모델링 비용 일부를 시에서 보조하는 ‘Senior-friendly Home’ 정책을 통해, 노후 단독주택에도 휠체어 진입 구조, 자동 조명, 응급벨 시스템을 장착할 수 있도록 했다.

베를린은 도시 인프라 자체를 ‘젊은이 중심’에서 ‘모든 세대 중심’으로 전환한 대표 사례다.

서울의 현실과 문제점: 가입만 했지, 실천은 부족

서울시는 2013년 WHO 고령친화도시 글로벌 네트워크에 가입했다. 이후 구로구, 강남구, 강동구, 서대문구 등 여러 지자체도 개별적으로 가입해 관련 조례를 제정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선언적 가입’에 머물고 있으며, 실제 제도화와 예산 투입은 미진하다. 예를 들어 서울시의 65세 이상 고령자 중 단 8%만이 무장애 공공시설에 접근 가능하며, 휠체어 이동 가능 보행로는 전체의 12%에 불과하다.

또한, 지하철 환승 통로, 버스 정류장, 공공건물의 계단 등은 고령자에게 지나치게 불편한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고령자에게는 도시가 너무 피곤한 공간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가 ‘고령친화도시’를 진심으로 추진하려면, 단순히 복지부서에 예산을 주는 것에서 벗어나 

도시계획 

건축기준 

교통정책 

정보 접근성 

고령자 일자리 등 

전반적인 행정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결론: 고령사회는 피할 수 없다, 품어야 한다

고령사회는 더 이상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의 도시가 직면한 현실’이다. 이를 피할 수 없다면, 도시 정책은 그들을 품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시스템으로 진화해야 한다.

  • 도시는 젊은이만의 공간이 아니다.
  • 도시 고령화는 새로운 소비시장과 사회적 기회를 창출할 수 있다.
  • 고령자를 위한 도시는 결국 모든 세대에게 더 좋은 도시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도쿄의 치밀함, 파리의 세대 통합 철학, 베를린의 인프라 리모델링 같은 구체적이고 실행력 있는 전략이다. 도시 고령화를 위기로만 볼 것이 아니라, 도시 재설계의 기회로 삼아야 할 때다.

포옹하는 할머니와 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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