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거주 수요가 주도하는 부동산 시장, 전세가율이 더 이상 핵심이 아닌 이유
전세가율로 집값을 설명하는 시대는 끝났다
오랫동안 전세가율은 집값의 방향성을 가늠하는 핵심 지표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전세가율이 높으면 전세를 끼고 매수하는 투자 수요가 유입되고, 이는 매매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공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2020년대 중반으로 접어든 지금, 이 공식은 실제 시장과 괴리된 분석이라는 것이 점점 명확해지고 있습니다.
서울의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KB부동산 기준, 서울의 전세가율은 2017년 73%에서 2025년 현재 50% 초반까지 하락했습니다. 전세가율만 보면 매매 전환이 어려운 환경이지만, 서울의 집값은 여전히 전국 최고 수준으로 상승해 왔습니다. 이는 전세가율이 상승의 원인이 아니라 상승 이후 따라오는 ‘결과’일 뿐이라는 점을 강하게 시사합니다.
서울 집값을 끌어올린 진짜 원동력: 실거주 수요
전세가율이 낮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집값이 오르는 배경에는 뚜렷한 수요 변화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다주택자 중심의 투자 수요가 시장을 주도했다면, 현재는 규제와 세금 부담으로 인해 실거주 목적의 수요가 시장의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여러 채를 사지 않고, ‘하나를 사더라도 가장 좋은 조건의 집’을 선호하는 흐름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현상이 바로 ‘똘똘한 한 채’ 전략입니다. 단순히 고가 아파트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교통, 학군, 직장 접근성, 향후 개발 가능성 등을 고려한 실거주 및 자산 가치가 동시에 우수한 집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서울 핵심지역, 특히 강남·서초·용산·마포·성동 등의 집값은 강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으며, 그 외 지역과는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습니다.
‘선택의 시장’으로 바뀐 주택 시장 구조
현재 주택 시장은 이전처럼 전방위적으로 오르는 시장이 아닙니다. 수요자들이 매우 까다로운 기준으로 입지, 상품성, 향후 가치 등을 분석해 선택적으로 매수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특히 자녀 교육, 출퇴근, 인프라 등 실생활의 만족도를 중시하는 실수요자 중심 시장에서는 가격에 대한 민감도가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이는 거래량이 많지 않더라도 가격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 구조를 만들고 있습니다. 매수자는 가격이 맞지 않으면 기다리며, 매도자 또한 급매로 내놓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 결과 거래량은 감소하지만, 성사되는 거래는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에서 이뤄지는 이른바 ‘저유동성 고가격’ 시장이 형성되고 있는 것입니다.
지방과 수도권 외곽, 전세가율은 높지만 매매는 약한 이유
일부 지방 도시나 수도권 외곽에서는 여전히 전세가율이 70% 이상으로 나타나는 지역이 많습니다. 이는 겉으로 보기엔 매매 전환이 수월할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매가 활발하지 않습니다. 핵심은 ‘장기적으로 거주하려는 실수요’의 부족입니다.
전세는 살기 위한 수요이지만, 매매는 미래를 위한 선택입니다. 해당 지역에 오래 거주하고 싶지 않거나, 자산 가치에 대한 기대가 낮다면 전세 수요는 있어도 매매 전환은 이뤄지지 않습니다. 결국 높은 전세가율은 오히려 수요자들이 매수를 기피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이는 매매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과거 다주택 중심 시장에서도 동일했습니다. 다주택자들은 자신이 갖은 현금을 지키기 위해 집을 매수하고 이를 전월세 시장에 내놓으면 구태여 장기간 거주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 이러한 주택에 전세로 살게 되었던 게 관례였습니다. 다주택자들은 자산을 가질 수 있어 좋았고, 세입자들은 조금 더 저렴하게 집을 거주할 수 있어 좋았던 시장이었습니다. 물론 현재는 그러한 시장이 빠르게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똘똘한 한 채’ 집중이 부른 양극화의 심화
실거주 수요는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움직입니다. 전국 어디든 상관없이 좋은 입지, 좋은 교육환경, 좋은 개발 호재가 있는 곳에는 수요가 몰립니다. 이런 선택적 집중은 수도권 내에서도 양극화를 낳고 있습니다. 서울 강북 일부 지역, 경기 남부 일부 택지지구, 인천 신도시 등은 수요가 약해 가격 상승이 미미하지만, 강남3구·용산·마포 등은 소수의 거래만으로도 신고가가 갱신됩니다.
이러한 현상은 장기적으로 부동산 시장 내 양극화를 고착화시킬 우려가 큽니다. 실거주 선호지역의 한정된 공급과 매물 희소성은 계속 가격을 끌어올리는 반면, 상대적으로 수요가 약한 지역은 입주 물량이 쏟아지면 가격이 오히려 하락하는 이중 구조가 심화되고 있습니다.
결론: 집값은 비율이 아니라 ‘선택’의 결과
이제 우리는 부동산 시장을 이해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합니다. 과거에는 전세가율이 집값의 상승 가능성을 예측하는 주요 지표였다면, 지금은 ‘어디에 살고 싶은가’라는 수요자의 선택이 집값을 움직이는 핵심 요소가 되었습니다. 실거주 수요는 자산의 안정성과 생활의 질을 모두 고려한 전략적 선택을 하며, 이 선택은 특정 지역에 강한 집중 현상을 만들어냅니다.
정책 또한 이러한 수요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하고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히 전세가율이 높다는 이유로 매수 전환이 이뤄질 것이라 기대하는 정책은 실효성이 낮을 수 있습니다. 실거주 수요가 어디에 있고, 어떤 요소를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파악해 그에 맞는 공급과 제도를 설계하는 것이 집값 안정의 시작점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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