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월세 시장의 진짜 원인: 집주인 탓인가, 정책 실패인가?
최근 한국경제TV가 보도한 “집주인 마음대로...균형 깨진 전·월세 시장” 기사는 전세 매물의 부족과 월세화 현상이 임차인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는 현실을 잘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해당 기사에서 사용한 ‘집주인 마음대로’라는 표현은 시장의 본질적 작동 원리나 구조적 문제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본질을 흐리는 진단입니다.
문제의 본질은 '공급 부족'과 '구조적 수요 증가'에 있다
전세 시장의 불안정은 단지 특정 집주인의 욕심이나 결정에 의한 결과가 아닙니다. 한국의 임대차 시장은 지금까지 정부 정책, 금융 조건, 인구 구조 변화 등 수많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단연 공급 부족입니다. 서울시 기준으로 2024년 입주 예정 아파트 수는 2만8000여 가구로, 이는 최근 10년 평균보다 20% 이상 낮은 수치입니다. 이와 동시에 통계청에 따르면 1인 가구는 전체 가구의 33%를 넘었으며, 매년 약 35만 가구가 새롭게 생겨나는 등 가구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임대차 규제가 불러온 월세화 전환
2020년 도입된 ‘계약갱신청구권제’와 ‘전월세 상한제’는 초기에는 임차인을 보호하는 선의의 제도였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전세 공급을 인위적으로 줄이는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계약 연장을 해야 하는 집주인 입장에서는 5%밖에 못 올리는 임대료를 감수해야 했고, 신규로 계약할 수 있는 집은 줄어들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 최근 대출 규제까지 더해졌습니다. 2025년 10·15대책에 따라 중도금 대출 LTV 한도는 60%에서 40%로 줄었고, 세입자들이 쉽게 전세를 구하지 못하게 되자 다수는 월세로 밀려나게 됩니다. 결국 ‘전세 물건 부족 → 월세 전환 → 월세 상승’이라는 연쇄 반응이 일어난 것입니다.
공공임대, 민간임대 모두 줄어드는 이중 악순환
정부는 공공분양 확대를 통해 공급을 늘리겠다고 했지만, 민간에서는 오히려 분양을 연기하거나 포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실제로 직방에 따르면 2025년 7~11월 예정되었던 분양물량 중 실제 분양된 비율은 74%에 그쳤습니다.
공공임대도 장기적 공급 계획이 미흡합니다. 반면 민간 임대사업자에 대한 규제가 지속되며, 주택임대사업 등록제 혜택도 사실상 대부분 사라졌습니다. 이는 전세 시장에서의 공급 주체들이 하나씩 이탈하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임대인도 '선택지'가 제한된 구조 속에 있다
임대인은 가격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선택받는’ 구조입니다. 전세가 넘쳐나는 시기에는 집주인들이 보증금을 낮추거나, 수리 상태를 개선하거나, 조건을 맞춰야만 임차인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 반대의 상황입니다. 매물은 적고 찾는 사람은 많습니다. 따라서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집주인 마음대로'라는 표현은 가격 결정의 주체를 오도하고, 구조적 수급 요인을 간과한 접근입니다. 임대인 간의 경쟁이 존재한다면 그 누구도 마음대로 가격을 설정할 수 없습니다.
전세 수급지수 158, 시장은 이미 위험 수위
KB국민은행 기준 서울 전세 수급지수는 158입니다. 이 수치는 수요가 공급보다 월등히 많다는 뜻입니다. 과거 2021년 ‘전세대란’ 시기와 유사한 수치이며, 시장은 다시 임차인이 불리한 구조로 회귀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가계 대출 규제도 시장 왜곡의 핵심 요인
전세대출은 실수요자의 유일한 주거 사다리입니다. 그러나 대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전세로 살고 싶은 사람들도 어쩔 수 없이 월세로 밀려나게 됩니다. 전세대출은 줄었지만, 임대 물량은 줄지 않았기 때문에 남은 사람은 더 높은 가격을 감수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외국과 비교해보면 더 명확해지는 한국의 전세 시장
영국, 독일,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은 대부분 월세 중심의 주거 시장을 운영하며, 보증금이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과거 전세라는 독특한 제도가 주거비를 낮춰주는 기능을 수행해왔습니다. 이 제도가 약화되면서, 이제 한국도 빠르게 월세화되고 있으며, 그 속도는 정부 규제 강화 이후 훨씬 빨라졌습니다.
내수 침체와 연결된 주거비 상승 문제
월세는 매달 지출되는 고정비입니다. 전세와 달리 주거비가 매달 가계지출을 압박하게 됩니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서울 거주 월세 거주자의 월 주거비는 평균 86만원으로 전년 대비 11% 상승했습니다.
주거비가 높아지면 소비 여력은 줄어듭니다. 결국 자영업 매출 감소, 서비스업 침체, 소비 위축 등 내수 경기에 직접적인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기자가 간과한 것: 수급과 금융 구조
기사의 문제는, 전·월세 상승의 표면적 현상만 보도하고 구조적 원인은 놓쳤다는 점입니다. '집주인 마음대로'라는 문장은 임대차 시장이 마치 독점 시장처럼 왜곡되어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으나, 실제로는 정부의 금융 규제와 공급 부족이 만든 시장의 구조적 결과입니다.
기자는 현장의 고통을 전달하는 데 집중했지만, 독자에게 정책 개선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분석은 부족했습니다. 이 점에서 해당 보도는 보다 균형 잡힌 설명이 필요합니다.
정책적 제언: 임대차 시장 정상화로 민생 회복해야
- 전세대출 규제의 단계적 완화
- 민간임대사업 등록제 혜택 일부 복원
- 공공임대 확대와 함께 민간공급 확대 유도
- 가계 주거비 부담 완화를 통한 내수 소비 증대
결론: 주거 시장은 시장이다. 시장의 원리를 잊지 말아야
전월세 시장은 단순한 감정이나 도덕의 문제가 아닌 철저히 시장 원리에 따라 작동하는 경제 영역입니다. 수요가 많고 공급이 부족하면 가격이 오르고, 이는 어느 한쪽의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결과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책임 공방이 아니라, 근본 원인에 대한 구조적 분석과 이에 기초한 정책의 재설계입니다. 이를 통해 전세 수요자와 임대인 모두가 공존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시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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